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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4

낙산해변 일출!

 

 

저기 해 나오고 있음

 

 

 

 

 

 

사천해변

 

사랑
파도가 매우 심했던
반대편은 또 잠잠..신기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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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지난 후기 ㅋㅋㅋㅋ

 

 

서울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기간 : 2018.12.08 ~ 2019.01.01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장소 : 청계광장 일대

 

너무 추워서 대충 후다닥 사진만 찍고 왔음.

대충 찍었어도 느낀게 있다면

빛초롱 축제보다 더 좋았나는거?

그리고

어쩌다보니 이틀 연속으로 방문 하였음.

 

 

 

 

역시나 이번에도 거꾸로 관람!

 

 

 

 

 

 

유난히 ♡가 많았다. 특히 보라색

 

 

 

 

 

 

 

 

 

 

 

 

 

 

 

 

 

 

 

 

 

 

 

 

 

 

 

 

 

 

 

 

 

 

 

 

 

 

 

 

 

 

 

 

 

 

 

 

 

서울 광장~!

스케이트장은 다음에 가기로..예약이 꽉차서 몇시간 기다려야했음 ㅠ

 

 

 

 

 

 

 

 

 

 

 

 

나랑 우리 집에 가자 ^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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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e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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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7

오대산 - 월정사, 상원사, 중대사자암, 적멸보궁

 

 

 

월정사에서 차로 10분정도 가면 상원사!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고~

원래는 월정사에서 따뜻한 차 한잔 하려했으나

9시 전이라서 오픈을 안해서 못마시고

상원사로 이동했다.

창가에 어느분이 컵라면 보이는게 보이길래

우리도 먹자고~ㅎㅎㅎㅎ

 

너무~ 추워서 오뎅, 컵라면, 한방약차를 주문했다.

오뎅.. 낱개로도 팔더라.. 우린 모르고 그냥 5,000원짜리 시켰는데

말도 안해주고 ㅡㅡ;

 

 

넓적한 직사각형 오뎅을 좋아하지만

이것도 쫄깃하니 맛있었다.

한방약차는.. 음.. 내가 생각한 그 맛이 아니였음. 실망

 

 

 

 

 

 

 

월정사에는 돌조각이 많았다면

상원사에는 이런 글귀? 들이 있었다.

오대서약

하나. 다른 생명을 아끼면서 함께 살아갑시다

둘. 남의것 욕심 내지 말고 자기 살림을 아낍시다

셋. 맑은 몸과 정신을 지니고 바른 행동을 합시다

넷. 남을 존중하고 말씀을 아낍시다

다섯. 밝은 생활을 하면서 좋지 못한것을 하지 맙시다

 

 

 

 

 

 

천장에 있는 그림을 유리로 볼 수 있다.

 

 

 

 

 

나를 보고 웃고 있소?

 

 

 

 

상원사동종 국보 제36호.


현존하는 한국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우며 청아한 소리 또한
이루 비길 데 없는 이 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조성되었다.

 

조선 태종 때 불교가 박해를 받을 때 안동으로 옮겨졌다가 조선 예종 원년(1469)에 상원사에 다시 옮겨진 것으로, 한국 종 고유의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 범종이다. 음통(音筒)이 있는 용뉴(龍뉴) 아래 종신은 약간 길쭉하게 배를 불리다 끝에서 안으로 살짝 오므라든 형태가 이상적인 비례감과 안정감 있는 조형미를 이루었고, 풍부한 양감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 수법이 사실적이다.
종신(鐘身)에 있는 상대, 하대, 4유곽(乳廓)의 문양은 당초문을 바탕으로 2 ~ 4인의 작은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이 있는 반원권문(半圓卷紋)이 새겨졌고, 종복(鐘復)에 비천상과 교대로 있는 당좌(撞座)는 8판연화문(八瓣蓮花紋)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비천상은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구름 위에서 천의(天衣) 자락을 휘날리는 모습이나 또 공후(공후)와 생(笙)을 연주하는 손의 표현이 매우 섬세하여 생동감이 넘친다. 볼록한 두 뺨, 유연한 신체에 걸친 천의 등은 8세기 전반의 이상적인 사실풍의 불교 조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정상에는 약동하는 용이 있고 그 옆에는 연꽃이 조각된 음통이 붙어 있다. 용뉴 좌우에는 70자에 달하는 명문이 해서체로 음각되었는데 첫머리에 '개원 십삼 년을 축 3월 8일 종성기지(開元 十三年 乙丑 三月 八日 鍾成記之)'라고 되어 있어,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원사 종에 보이는 음통, 종 끝부분이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형(鐘身形), 상대와 하대 및 4유곽 등의 주조적인 특징은 한국 종의 대표적인 유형이 되어 이후의 모든 종이 계승되었다.


이 종의 소재 사명(寺名)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조선 초기에는 경북 안동 본부(本府) 문류(門樓)에 걸려 있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종은 안동 근처의 어느 사찰에 봉안되어 있다가 태종이 불교를 박해할 때 안동 문루로 옮겨졌다고 한다. 세조 때 상원사에 봉안할 종을 팔도에서 찾고 있던 중 안동에 있던 이 종이 선정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세조가 승하한 직후인 예종 원년(1469)에 상원사에 도달했다고 한다. 종을 안동에서부터 상원사로 옮겨오던 중에 3,379근(斤)이나 되는 큰 종이 장차 죽령(竹嶺)을 넘으려 하는데 노상에서 움직이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종 꼭지를 하나 떼어서 안동으로 보내니 비로소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전설을 입증하듯 네 곳의 유곽 안에 1곽(廓)의 종유가 하나 없다. 이러한 고사는 대종 운반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지만 민속신앙의 한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상원사
나라 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선원으로서도 널리 알려져, 일찍부터 월정사 산내 암자에 그치지 않는 명성을 누려 오고 있다. 특히 사람이 자주 다니는 도로에서 멀지 않은데도 깊은 산사의 숙연한 분위기가 매우 뛰어나, 참선수행으로써 본래의 참면목을 깨우치려는 눈 푸른 수행납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었는데, 처음 이름은 진여원(眞如院) 이었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 성지로서 그 이름을 빛내면서 마침내 오류성중(五類聖衆) 곧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화 되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이때의 창건 설화를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저마다 일천 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 에 이르러 여러 날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元年)에 형제가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형 보천태자는 오대산 중대 남쪽 밑 진여원 터 아래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두 사람은 함께 예배하고 염불하면서 수행하였으며 오대에 나아가 공경하며 참배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로,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


이 때, 신문왕의 후계를 두고 나라에서 분쟁이 일자 사람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왕위를 이을 것을 권하였는데 보천태자가 한사코 돌아가려 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효명이 사람들의 뜻을 쫓아 왕위에 올랐다. 그가 성덕왕(聖德王)이다. 왕이 된 효명태자는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이 여러 모습으로 몸을 나타내 보이던 곳에 진여원을 개창하니 이곳이 지금의 상원사이다.


고려시대에는 상원사가 어떠한 중창의 발자취를 걸어왔는지 밝히는 자료는 없으나 이색(李穡)의 ' 오대 상원사 승당기(五臺上院寺僧堂記) ' 에는 고려 말 '나옹스님의 제자라고 알려진 영로암(英露庵) 이라는 스님이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터만 남은 상원사를 중창하였다' 고 적혀있다.


고려 말부터 일기 시작한 척불(斥佛) 정책은 조선시대에 들어 더욱 거세어져 불교는 극박한 박해를 받기에 이르렀다. 태종은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고 11종(宗)이던 불교 종파를 7종으로 통합하는 등 척불에 앞장섰으나 만년에는 상원사 사자암을 중건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았다. 또 나아가서는 권근(權近) 에게 명하여 ' 먼저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후세에까지 그 이로움이 미치게 하여 남과 내가 고르게 불은(佛恩) 에 젖게 하라 ' 고 하였다.
이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불교에 귀의하여 그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많은 불사를 행하였으며 나라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서의 간행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세조는 오대산에서 두 번의 이적을 체험하였다. 지병을 고치려고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나서 병이 나았고, 상원사 참배 중에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일화가 그것이다. 이렇듯 세조와 상원사는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1984년에 발견된 문수동자 복장에서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문수동자상을 봉안한다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근세에는 방한암 스님이 오대산으로 들어온 뒤로 상원사에서 이십칠 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수도 정진하였으며 수련소를 개설하여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오늘날에도 전국에서 선남선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불교 성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중대사자암 & 적멸보궁 올라가는 길

 

 

 

 

바람이 장난 아니였음.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깐

그렇게 먼길도 아니니깐

적멸보궁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가팔라서 그렇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

사자암 지나서 막판에 0.3km... 경사가 완만해지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제일 길게 느껴졌다.

 

 

 

멀리서 사자암 보고 감탄~

산속에 이렇게 층층이된 절은 처음봤음.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의 수호 암자인 중대 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가는 길을 이십 여분 올라가다보면 만나게 된다. 조선 태종 1400년 11월 중창되었으며 이후 왕실의 내원당內願堂으로 명종 대에 승영僧營사찰로 보호되기 시작하였고 1644년부터 1646년 사이에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왕실보호로 사세寺勢를 유지하고 건물을 보수해 나갔으며, 1878(고종 15년)년 재건되어 요사채로 사용되던 향각香閣이 낡고 헐어 1999년 퇴우 정념스님께서 제불 보살님께 발원하고 오대五臺를 상징하는 오층으로 향각을 신축하여 2006년 8월에 완공하였다.


중대 사자암의 법당인 비로전毘盧殿은 화엄경의 주불이신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셨으며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조성했다. 비로전 내 벽체 사방의 8면에 각각 다섯 사자좌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상계上界에 500문수보살상과 하계下界에 500문수동자상 세계가 펼쳐져 있다. 세계최초로 조성된 양각으로 새긴 극락보수 삼존불상 후불탱화의 장엄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외경심을 느끼게 한다.

 


 

중대 사자암에서 적멸보궁까지 계단으로 잘 되어있다.

근데 난 상원사에서 중대사자암까지 있던 다듬어지지 않은 흙길이 더 좋았다.

(다른 쪽으로 계단으로 된 길도 있음)

 

계단은 나에게 쥐약.

내려오면서 또 시작된 무릎 통증ㅜㅜ

(일주일 내내 온몸이 고생했다.)

 

 

 

용안수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 사리를 봉안한 곳이다.
적멸보궁은 모든 바깥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라는 뜻이다.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이 없으니 괴로울 것이 없는 부처님의 경지를 나타낸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법당 안에는 따로 부처님 상을 조성하지 않고 불단만 설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는 다섯 군데의 적멸보궁이 있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하던 가운데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얻은 석가모니 진신 사리를 봉안한 불교의 성지이다.


중대에 위치한 적멸보궁은 오대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맥들이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중앙에 우뚝 솟아있다. 적멸보궁이 자리한 곳은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용의 머리에 해당된다.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곳을 방문하고 천하의 명당이라고 감탄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중대는 또한 오대산 오만보살신앙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니 곧 동대의 일만의 관음보살, 남대의 일만의 지장보살, 서대의 일만의 대세지보살, 북대의 오백 나한들이 중대 적멸보궁의 불사리를 법신불로 상정하여 예배 공양하고 있다.


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불사리를 모신 곳이라 불상이 안치되어 있지 않고 불단만 조성되어 있다. 전면 중앙 문에만 두 짝 판장문을 달았고 좌우 칸에는 중방을 설치하여 상부에는 띠살의 하개교창을 달았으며 하부는 판장벽으로 되어있다.
지방 유형문화재 제28호

 


 

높이가 궁금하여 중간부터 LG헬스 기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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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서울 빛 초롱 축제

Seoul Lantern Festival 2018

 

행사일시 : 2018.11.02(금) ~ 2018.11.18(일)
행사장소 : 청계천(청계광장~수표교/1.2Km)
행사주제 : 서울의 꿈, 빛으로 흐르다.

행사주최 : (사)서울빛초롱축제조직위원회
행사주관 : (재)서울관광재단

홈페이지 http://www.seoullantern.com
이용요금관람비 : 무료 (부대행사 참가시 소정의 참가비 있음)

 

 

 

2018 서울빛초롱축제 “서울의 꿈, 빛으로 흐르다.”

 

지난 9년간 서울 빛초롱 축제는 서울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아왔습니다.
10주년을 맞이한 이번 축제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새롭게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이제는 추억과 전통의 흔적으로 남은 오래전 사람들의 꿈을 만나고

그 꿈들이 하나 하나 빛나고 있는 오늘날 도시의 밤하늘을 걸으면서,

우리는 함께 새로운 미래를 상상합니다.
빛의 길을 따라 시간여행을 시작하면 다양한 시대의 사람들이 품었던 꿈들을 빛초롱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의 도시부터 대중 문화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온 근현대의 추억들, 그리고 풍요로움을 소망하며 흥겨운 잔치를 열던

600년전 조선시대 사람들의 풍경까지,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빛내고 내일을 열 우리 모두의 꿈을 함께 만나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

 

 

테마별
- 주제 1 : 새로운 꿈의 출발
- 주제 2 : 미래를 꿈꾸는 서울 (편리한 미래기술의 꿈 / 조화롭고 행복한 도시)
- 주제 3 : 추억이 빛나는 서울 (청년의 열정을 추억하다 / 동심으로 본 세상)
- 주제 4~5 : 전통이 흐르는 서울 (풍요의 축제, 화합의 잔치)


 

주제 1 : 새로운 꿈의 출발

 

 

" 서울빛초롱축제, 10년의 감동과 미래의 꿈이 가득한 서울을 만나다."

서울을 대표하는 빛 축제인 서울빛초롱축제가 올 해로 10주년을 맞이 했습니다.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운 축제로 탈바꿈하는 이번 빛 초롱축제의 첫번때 구간은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된 기념등으로 시작됩니다.

지난 9년간 빛초롱축제를 즐기며 느꼈던 아름다운 추억과 희망을 기억하며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빛초롱축제를 약소하는 10주년 기념등 '10년의 감동, 100년의 빛으로'를 지나, 서울의 관문이나 유라시아의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하는 서울시밈들의 꿈을 담은'미래로의 출발지, 서울역'등으로 2018서울빛초롱축제의 화려한 출발을 알립니다.

 

 


 

- 주제 2 : 미래를 꿈꾸는 서울

 

안내봇

 

 

배달드론

 

 

가상현실(VR체험)

 

 

스카이카

 

 

세그웨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걷기 좋은 서울

 

 

운동하는 서울

 

 

우리모두 하나되는 전국체전 해띠 해온

 

 

도심 속 소확행

 

 

푸드트럭

 

 

도시농부

 

 

자전거 라이딩

 

 

한류 공연

 

 

길거리 공연

 

 

문화비축기지

 


 

- 주제 3 : 추억이 빛나는 서울

 

추억이 빛난는 N서울타워

 

 

통기타 선율

 

 

종로전차

 

 

롤러 스케이트

 

 

추억의 패션

 

 

배낭 여행자

 

 

빛 바랜 시집

 

 

타요

 

 

라니

 

 

라바

 

 

물고기의 향연

 

 

팽이놀이

 

 

썰매타기

 

 

빛의 숲

 

 

사슴의 비상

 

 

필리핀의 성탄절(필리핀 관광부)

- QR코드 이벤트 하고 있음

 

 

단청문양LED

 

그 시절 나의 영웅 로보트 태권V

 


 

- 주제 4~5 : 전통이 흐르는 서울

 

 

대금, 가야금 산조

 

 

선비의 학춤

 

 

부채춤

 

 

선비의 상경길

 

 

전통의 행렬 왕가의 산책

 

 

봉황의 군무

 

 

朝日合鳴 조 일 합 명

 

 

 

월하정인

 

 

판소리

 

 

저잣거리 장수

 

 

전설 속 청룡

 

 

대종

 

 

천안문

 

 

종묘정전

 

 

종묘제례악

 

 

전통혼례

 

 

남사당패

 

 

우아한 학

 

 

사자 춤

 

 

노원구 사랑이

 


몇 장 못 찍음.. 일부만 본 줄 알았는데 홈페이지 보며 사진 정리하니.. 거의 다 보고 온 거네 ㅋ


일요일 저녁 5시부터 6시까지 약 1시간 정도 관람.

종로 중간에 들어가서 청계광장까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두울 때 보려고 저녁도 무려 4시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카페가기도 시간이 애매 할거 같아서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5시부터 관람했다.

그동안 빛 초롱 축제를 몇 년 동안 봤는데

올해가 가장 안 추웠다..

이른 시간 이어서 그런가?

예년에 비하면 사람도 적은 편~

예전엔 진짜 사람에 휩쓸렸던 적도 있었는데.

시간이 되면 가볍게 산책 겸 둘러보기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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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7

오대산 - 월정사, 상원사, 중대사자암, 적멸보궁

 

계획에 없던 일정

콧바람 슝슝

새벽 5시 수원 출발!

 

출발하고 바로 사고가 나서 가지 말까 했는데

그래도 그냥 가자 해서 어디 갈까 하다가 

맨날 강원도 갔다 오면서 지나쳐만가고

저기 나중에 가보자 했던

오대산 월정사를 가게 됐다.

 

 

사찰 입장료 참 말 많져..

나도 불만이긴 해..

제대로 관리만 한다면야 얼마든지 내겠지만

뒷돈으로 들어가는 꼴은... 부들 부들

 

 

입장료 3,000원

주차 5,000원 (경차 2,000원)

 

 

 

 

일단.. 엄청 추웠다.

작년 딱 이맘때는 설악산에 갔었는데

그땐 단풍도 이쁘게 들고 날도 딱 적당했는데

올해 확실히 추위가 빨리 왔나 보다

단풍도 한풀 꺽이고.. 너무 추웠다.

내가 몸에 열이 많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열이 확 나서 땀나는데

이날은 몸에 두꺼운 목폴라를 계속하고 다녔는데도

덥지가 않았다.

손 시려워서 마침 차에 있던 장갑도 꺼내서 끼고~덜덜덜~

너무 추워서 월정사는 제대로 둘러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곳곳에 알록달록 이쁜 단풍들이 있었다.

 

 

이쪽이 유명한 전나무 숲길.

나는 일단 패스.

너무 추워서 귀찮았다.

그리고 풍경이 와 닿지 않았다.

흰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흰색일 때나,

아니면 여름에 초록 초록할 때가 멋있을 거 같아서..

다음에 또 올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아닌 걸로 하고 걷지는 않았다.

 

 

 

반대쪽 빨간 단풍

 

 

 

 

월정사 입구

 

천왕문(天王門)

금강교를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 천왕문이다.
일명 사천왕문四天王門이라고도 하며 대개 일주문 다음에 천왕문(天王門)이 있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수미산 중턱에 살고 있는 불법을 외호外護하는 신장神將을 모신 전각이다. 이 천왕들은 수미산 중턱의 동, 서, 남, 북에서 그들 무리와 살면서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며 불법을 수호한다.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왼손에 비파를 들었고, 남방 증장천왕僧長天王은 오른손에 보검을 들었고,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오른손에 용을 왼손에 여의주를 들었고,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월정사의 천왕문은 조선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천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벽화에는 중국선종의 제2대조인 혜가, 부모은중경, 자장율사, 지장보살, 포대선인, 기인 한산의 설화가 그림으로 설명되어있다. 1974년 만화스님이 중건했다.

 

 

 

적광전, 팔각구층석탑

 

적광전(寂光殿)

팔각구층석탑 뒤에 만월산 자락의 한 기운이 엉긴 곳에 자리한 적광전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법당으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갖가지 문양이 어우러진 단청은 매우 화려하다.
1930년대의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과거 7불을 보신 칠불보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아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68년에 만화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다시 중건되었다.


적광전 외부 기둥 18개 중 16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이며, 내부기둥 10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전나무로 만들었다. 적광전이 소실되기 전에는 칠불보전七佛寶殿이라 했다.


대체로 적광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인데 이곳 적광전은 그 통례를 깨고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그대로 따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이는 1964년 만화스님 법당 중창당시에는 현판이 대웅전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탄허스님의 오대산수도원을 기념하기 위해 결사의 주主 경전이었던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으로 고쳐 현판을 달았다.


적광전 뒷면 벽화는 10개의 소를 찾아 다니는 이야기를 그린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적광전 현판과 주련柱聯 글씨는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주련의 넉 줄은 자장율사의 불탑게이다.


만대윤왕삼계주

萬代輪王三界主

쌍림시멸기천추

雙林示滅幾千秋

진신사리금유재

眞身舍利今猶在

보사군생예불휴

普使群生禮不休

만대의 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여

사라쌍수 열반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지금 여기에 모셨으니

뭇 중생으로 하여금 예배를 쉬게 하지 않으리.

 

 

 

 

팔각구층석탑

월정사의 본당인 적광전의 앞뜰 중앙에서 조금 비껴난 자리에 팔각구층석탑이 서 있다.

팔각구층석탑은 연꽃무늬로 치장한 이층 기단과 균등하고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그리고 완벽한 형태의 금동장식으로 장엄한 상륜부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뛰어난 석탑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하나, 그 무렵의 탑들은 평면 정방형에 삼층 또는 오층의 탑으로 이루어진 것에 견주어, 이 탑은 평면이 팔각형이며 탑의 층수도 구층에 이르는 늘씬한 자태를 이루어 고려시대의 석탑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탑은 전체를 화강암으로 조성하고 상륜부에 일부 금동장식을 더하였는데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손상을 입은 부분이 더러 있으나 오늘날까지도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해 오고 있다. 기단은 아래층 각 면에 안상을 새기고 연꽃 장식을 베풀었다.
그 위로는 굄돌을 놓아 위층 기단을 정성스레 받들어 기단 전체가 마치 부처님의 연꽃 대좌처럼 장식되었다.
그 위에 탑신을 받았으니 탑신은 곧 부처님이다. 탑신 안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으니 불사리는 부처님의 진신이나 다를 바 없고 그러한 진신의 부처님이 연꽃 대좌 모양의 기단 위에 계신 것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기단 위에는 부처님을 앉히기 위한 방석과 같은 석재를 별도로 끼웠으며 탑 앞의 석조보살 좌상도 부처님과 같은 탑 앞에서 공양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
탑신은 각 층마다 줄어듦이 적고 층수는 구층을 헤아려 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팔각은 불교의 실천수행에 기본이 되는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다.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지고 일층의 사면에는 네모난 감실이 하나씩 있는데, 남면의 감실이 가장 크며 문틀을 단 흔적도 있다.


몸돌은 모서리마다 귀기둥이 새겨지고 끝은 밑면이 수평이고 위는 곡면으로 처리하여 추녀 끝이 살짝 위로 솟아 가뜬해 보이며 추녀 끝마다 풍탁이 달려 탑은 언제나 바람의 향기를 음미한다.
흐트러짐이 없는 정연한 상륜은 보탑의 격조를 한층 더하여 주며, 여기에 금동장식을 더하여 탑 위에 보관을 얹은 듯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하여 보탑의 절정부는 세련된 조형미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하여 1970년 해체보수를 통하여 1층 2층 6층 9층을 새 돌로 갈았으며 그 당시에 1층과 5층에서 총 12점의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은제의 불상 1구와 4점의 청동 거울, 금동 향합과 향주머니, 진신사리경 등의 총 12점의 유물들은 2003년 6월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또한 2000년 8월 월정사석조보살좌상 보수공사 시에 지하 1m 아래에서 탑의 기단부로 보이는 또 하나의 유구가 발견이 되어 학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팔각구층석탑은 높이 15.2m로 우리나라의 팔각석탑으로는 가장 크다. 그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서도 단연 으뜸이며 고려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려시대 초기인 10세기경의 작품이며 국보 제48호.

 

 

 

 

 

종고루(鐘鼓樓)

종고루는 적광전 정면에 있는 앞면 3칸, 측면2칸의 2층누각이다. 범종, 목어 운판, 법고 등의 불전사물을 봉안하여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때 사용한다. 이 사물은 모두 소리를 통해 부처님의 진리를 중생에게 전하고, 해탈성불을 이루게 한다는 교화의 의미를 가진다.
즉 법고를 두드려 부처님의 법으로 축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목어는 잠잘 때에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와 같이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의미를 지녔고, 물속 중생의 제도를 기원한다. 운판을 치는 것은 날짐승을 위한 기원이며, 범종을 치는 것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사람 등 일체 중생의 구제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목어와 법고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며 범종과 운판은 금속으로 만든다. 나무와 가죽은 땅의 소리를, 금속은 하늘의 소리를 의미하며 온 세상에 진리의 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마음을 담고 있다.
종고루 아래 석경원碩經院은 불교서적과 불교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불유각

부처님 우유가 있는 집이란 뜻으로 월정사를 찾는 이에게 시원한 감로수甘露水를 제공하고 있다. 큰 석확안에 물이 좋기로 유명한 오대산의 샘물이 솟아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월정사는 곳곳에 이런 조각들이 많이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문수성지 오대산월정사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는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으로, 산 전체가 불교성지가 되는 곳은 남한에서는 오대산이 유일하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된다. 
자장은 중국으로 유학하여 산서성 오대산의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이때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전해준 뒤,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주게 된다.
이후 귀국하여 찾게 된 곳이 강원도 오대산이며, 이때 월정사를 창건하고 오대 중 중대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조성하게 된다.

 

오대산신앙은 자장에 의한 문수신앙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통일신라에 이르면, 보천태자와 성덕왕에 의해서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5만 보살신앙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정립되는 것이, 중앙의 1만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동쪽의 1만 관세음·서쪽의 1만 지장·서쪽의 1만 대세지·북쪽의 1만 미륵보살의 5만 보살이다. 이때부터 월정사는 오대산의 다양한 신앙과 사찰들을 총괄하는 중심사찰의 위상을 확보하게 된다.

월정사는 이후 통일신라 말과 고려 초에는, 9산 선문 중 하나인 강릉 사굴산문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고려 말에는 나옹스님이 주석하게 되고, 조선 초에는 나옹문도들에 의한 불사와 정비가 이루어진다.
이후 조선 중기에 이르면 사명당이 주석하고, 또 조선왕실의 외사고外史庫가 오대산에 들어오게 되면서 숭유억불기에도 사세가 번성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이번에는 역으로 사굴 산문의 본찰인 굴산사가 오대산의 영향권으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정사는 해방을 전후해서 종정(교정)을 4번이나 역임하신 한암스님께서 주석하시며, 승가오칙僧伽五則 통한 청정한 기상을 진작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월정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의 위상을 확립하고, 동국대학교 건립을 주도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1.4후퇴 과정 중에, 아군에 의해 월정사를 비롯한 오대산의 암자들이 전소되면서, 오대산은 개산開山 이래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럼에도 화엄학의 대가이며, 불교경전은 물론 동양사상 전반을 아우른 탄허스님께서 주석하시며 월정사는 점차 추슬러진다. 이때 탄허스님의 제자 만화스님이 현 적광전을 중건하고, 이후 현해스님이 대법륜전을 건립한다. 그리고 현 주지인 정념스님에 의한 각고의 노력으로, 가람이 일신되면서 오대산의 성세가 재현되기에 이른다.
현재 월정사는 명상마을과 성보박물관 등을 전통사찰의 영역 밖에 새롭게 조성하면서, 2018평창 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 으로 전개하는 메카로 작용하고 있다.

 

 

 

 

woljeongsa.or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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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서울 나들이

 

작년 추석 때 종로 가서 육회 먹고 삼청동가 서 자몽 빙수를 먹었는데

그 뒤로도 엄마가 계속 자몽 빙수를 잊지 못하셔서

이번 명절 때도 빙수 먹으러 고고!!

 

 

동생이 일찍 치과 예약을 해놔서

의도치 않게 이른 시간부터 일정이 시작되었다.

 

간발의 차로 서울행 좌석 버스를 놓쳐서

기차 타고 서울역으로~

다시 전철 타고 종로로 갔다.

 

 

첫 번째 도착지는 조계사

두어 번 와봐서 그럴까 익숙하게 느껴졌고

이곳에는 엄청 큰 불상이 있다.

입구도 멋스럽게 잘 되어있다.

 

 

 

 

조계사를 나와서 바로 옆 인사동 거리

구경거리가 많다고 엄마가 좋아했다.

난 자주 와서 그런가 식상하고 그게 그거 같고ㅋㅋ

 

예전에도 한번 갔던 집인데

세일을 하고 있어서 들어가 봤다.

각자 마음에 드는 거 하나씩 고르고 바로 착용!

난 이날 생활한복을 입어서 그에 어울리는 자개스타일의 귀걸이를 구매했다.

가볍고 화려하면서도 무난하니 완전 내 스타일~

 

 

 

원래는 "조금"이라는 솥밥 집을 가려고 했는데

걷다 보니 지쳐서 그냥 쌈지길 옆 골목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그집"이라는 식당이었는데 외국인도 많고 맛도 무난했다.

우린 해물파전, 육회비빔밥, 낙지 돌솥,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원래 냉면 먹으려 했는데 계절 음식이라고 안된다고 했다. (메뉴판에는 그런 말 없었는데 ㅜㅠ

 

 

 

맛있게 먹고 나와서 익선동 쪽으로 갈까 하다가

우리 목적은 북촌 빙수이기에

너무 많이 걸을 거 같아서 그냥 원래 계획대로 빙수 집으로~

인사동 입구 쪽에서는 이런 행사도~

광화문 광장에서 한복 축제하던데 연관 있는듯했다.

 

 

 

따란~앞전 피드에서도 한번 적은 적 있는 북촌 빙수!

 

 

이날은 오렌지가 아니라 망고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맛있게 빙수 먹고~

어딜 갈까 하다가

청와대가 보이는 경복궁 신무문 쪽으로 향했다.

은행이 떨어져서 가는 길은 냄새가...

 

이날도 날씨가 환상~ 가을 하늘 정말 멋있다!

 

 

 

보고 싶은 두 분이 계신 곳~!

 

 

향원정은 19년 12월까지 공사

이렇게라도 볼 수 있게 해놔서 다행이다.

멋있다.

(일본 개놈의 시끼들 때문에..)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
亭)이라 불렀다. 향원지를 건너는 다리는 “향기에취한다”는 뜻의 취향교(醉香橋)이다.

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이다. 향원정으로 가는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라 하였다.

취향교는 조선시대 연못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긴 다리이다. 지금은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섬에 가게 되어 있지만, 원래는 취향교가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이 다리를남쪽에 다시 지은 것은 1953년이다. 향원지의 근원은 지하수와 열상진원샘이며, 이 물은 경회루의 연지로 흘러 가도록 되어 있다. 


참고로 경복궁은 지금도 복원사업이 한참이다.

 

 ㅇ 목적

- 일제점기 변형, 훼손된 경복궁을 원형복원,민족정기회복, 문화민족의 자긍심 고취

- 역사교육 및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 조성을 통한 올바른 전통계승

- 수도서울의 상징적 문화유산으로 조성, 조선 정궁의 기본 궁제 보존, 우리 문화의 역사성 및 우수성을 널리 알림


ㅇ 복원의 원칙

- 정전과 편전, 침전, 동궁을 갖춘 조선 정궁의 기본 궁제 보존, 세종 때의 우수한 과학 문화재 재현


ㅇ 복원 기준 시기

- 고종 때의 최종 경복궁 완공 시점인 1888년을 기준으로 함


ㅇ 복원 범위

- 복원정비 목표에 따라 경복궁 전체를 대상으로 함

- 고종 당시의 조선후기 궁중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 줌

- 건축물 뿐만 아니라 과학문화재나 궁중 생활풍속에 관계되는 것들도 복원

 

ㅇ 사업 기간 :

- 2011년 ~ 2045년


 

 

 

 

생과방이란 걸 운영해서 잠깐 쉬어 갈까 했는데

여기도 만석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작은 소반에 담겨 나오는데 아기자기 보기 좋았다!

꼭 다시 와서 이용해야지~

내년에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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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5 고성 통일전망대, 화진포해수욕장 

 

 

백담사를 둘러보고 어디를 갈지 고민

인제 자작나무 숲도 고민했지만 왕복으로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이 꾀 걸릴 거 같아서 다음에 가기로 하고

오랜만에 통일전망대를 가보기로 했다.

 

 

매번 지나가면서 저거 뭐지 했는데

이번에 바로 옆을 지나가게 됐다.

용대리 매바위 인공폭포!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겨울에는 얼음기둥의 빙벽 타기로 인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한다.

 

 


맑은 하늘 경치 구경하면서 구비구비 달리다 보면 이런 표지판이 나온다.

출입 신고하는 곳!

아무래도 민감한 지역이다 보니깐 신고가 필수다!

 

 

길 따라가다 보면 통일안보공원에 일열로 주차된 차들이 있다.

그곳에 주차를 하고 신고서 작성하러 이동.

-신청서 작성시 대표자 인적사항 적고, 차량번호, 차종, 출입인원을 적으면 된다.

이곳 휴게소는 아직도 옛스럽다. 호떡이랑 와플 사먹었는데 맛있었음~

 

1번 창구로 가서 출입신고서를 받고 주차비 5,000원을 낸다.

할인 따위는 없다.

(주차장 정말 허접한데...5000원이라니..)

 

신고서를 작성하고 다시 옆창구로 줄을 선다.

이곳에서는 입장료를 낸다.

어른 3,000원!

(나중에 집에 와서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주차료는 주식회사 통일전망대로, 입장료는 고성군수에게로 되어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나면 몇 시까지 옆 강당으로 가서 교육을 받으라고 안내를 해준다.

(영상은 정말 옛날 영상.. 아직도 이런 식으로 교육을 하다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젠 내용을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강당에서 8분 정도 영상을 관람하고 주차된 차를 가지고 다시 이동.(개별출발은 안되고 동시에 출발)

조금 달리다 보면 우리나라 최북단 마을 명파리를 지나고

민통선 검문소가 있다.

민통선 검문소에서 출입신고서를 제출하고 통일전망대 관광 표지판? 같은 민통선차량출입증을 받아서 차 앞에두고 이동하면 된다.

 

 

아래 사진처럼 새 건물 통일전망타워를 지어놓고 아직 오픈을 안 했다.

원래 사업기간이 17년 완공인데 다시 18년 8월로 미뤄지고..

내가 간 건 9월 후반인데 아직도 미완공이라니...

저기 올라가서 바라본다면 더 멀리멀리 볼 수 있을 텐데

특히 이날은 날씨도 정말 좋았는데!

아쉽다. 쉽게 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더 아쉽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니...

 

 

 

 

이곳은 이렇게 통일 불상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옆에는 성모마리아상이 있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전진십자철탑이 있는데 정말 흉하다.

 

 

 

 

기념 도장도 찍었다.

도장이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다른 종이를 챙겨 가는 건데 아쉽다~

 

 

 

통일전망대 관람을 자유롭게 한후 나올때는 자유롭게 나올 수 있고

다시 민통선 검문소에 총3장중 마지막 남은 출입신고서 제출하고 민통선차량출입증을 반납하면된다.

DMZ박물관도 가보고 싶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다음을 기약하고 이동했다.

 

 

통일전망대 위치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로 481


 

강원도를 왔으니 바다를 보고 가야지!

그래서 가까운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이동

사실 점심을 먼저 먹으려 했는데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먼저 들리게 됐다.

 

 

날씨도 좋고~

물도 맑고

살짝 발을 담가도 춥지 않았다.

물도 낮아서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물만 담그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조개도 잡고 있었다.

 

 

 

 

 

 

 

 

이곳은 가진 해변

강원도는 어딜 가나 풍경이 다 그림이다

너무 멋있고 좋다!

 

 

 

 

 

화진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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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5일 설악산 백담사

 

설악산에 있는 계조암을 자주 찾는 편인데 백담사는 항상 지나 만 가고 나중에 한번 가보자 했었다.

그 나중이 드디어 이번 추석 연휴가 되었다.

 

올해도 추석 연휴엔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감사합니다!

 

 

새벽 5시경 수원을 출발하여 8시 정도에 도착한 거 같다.

 

첫 도착부터 짜증이...

(동네 할머니의 불친절함과 딱딱함...)

초행길이다 보니 주차장이 2개인지 모르고 처음 나온 주차장으로 간 우리 잘못이니 누굴 탓하겠어 ㅠ

 

백담사 주차장은 2개가 나온다.

초입에 있는 건 마을 또는 개인이 운영하는 것 같고

안쪽에 버스표 구입하는 쪽에 있는 게 진짜 백담사 주차장 같았다.

우리는 잘 몰라서 첫 번째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다시 나가고 싶어도 한번 들어온 이상 돈을 내야 했다.

요금표도 빛에 바래 거의 안보였는데 1일 3,000원이었다.

 

 

 

물론 장시간 등산객에는 이득일 수 있으나

우리 같은 잠깐 절에 들리러 오거나 경차는 손해다!!!!

 

아주 조금만 들어오면 이렇게 백담주차장이 있음

 

승용차 기준으로 최초 3시간 3,000원

그 이후 1시간당 1,000원 가산요금

일 최대 요금 8,000원이다.

그리고 경차, 장애인, 유공자는 50% 할인받을 수 있다!

 

절만 갔다 오는 거라면 3시간 충분함!!

(물론 마을버스를 이용했을 경우. 걸어서 백담사를 간다면 편도 2시간은 걸린다고 하더라...)

 

 

 

 

 

백담사 쪽으로는 차량을 통제하기 때문에 사전에 허가된 차량과 마을버스만 올라갈 수 있다.

길이 외길이고 구불구불 험해서 그런듯 하다.

겨울에는 마을버스도 운행을 안 한다고 했다.

마을버스인데 요금은 좌석버스 수준

이것도 독과점이니 뭐(향토기업...).. 비싸도 타야지.

매표소에서 카드 결제 가능하다.

 

 

각자 개인 승차권 소지하고 버스 탈 때 내면 된다.

 

 

 

 

 

 

 

날씨가 정말 좋았음

아침일찍이라 쌀쌀하긴 했는데

맑은 하늘과 공기~!

날씨 덕에 주차장에서의 짜증이 살짝 풀렸다

 

 

 

 

 

 

 

 

 

 

 

 

 

 

 

 

 

매점에 쓰여있던 안내문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 붙여 논 듯하다.

편도 저 정도 시간이라면..

나는 살면서 가 볼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ㅜ

 

 

산으로 오르는 다리 쪽으로 가면 이렇게 계곡에 수많은 돌탑이 있다.

 

 

 

 

 

 

 

 

절 한쪽에..

이건 좀 아닌 듯.

죄인이잖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도 않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재산은 또 어떻게..

말을 말자

 

 

 

 

 

 

백담사

 

http://www.baekdamsa.org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북면 백담로 746

 

역사적 변천

『백담사사적』에 의하면, 이 절은 647년(진덕여왕 1) 자장(慈藏)이 설악산 한계리에 창건하였으며, 그 때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寒溪寺)라 했다고 한다.

창건한 지 50여 년 만인 690년(신문왕 10)에 실화(失火)로 소실되어 719년(성덕왕 18)에 재건하였다. 「심원사사적기」에는 이 때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낭천현(狼川縣)에는 비금사(琵琴寺)가 있었으며, 주위의 산은 짐승들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곳의 산수가 매우 더러워졌지만,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 그와 같은 더러움을 싫어한 산신령은 하룻밤 사이에 절을 설악산의 대승폭포 아래의 옛 한계사터로 옮겼다.

그 사실을 모르는 승려와 과객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비금사는 틀림없었지만, 기암괴석이 좌우에 늘어서고 전후에 쏟아지는 폭포가 있는 산은 이전과 달랐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몰라할 때 갑자기 관음청조(觀音靑鳥)가 날아가면서 “낭천의 비금사를 옛 한계사로 옮겼노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그 신이함을 알렸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 전설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지방 사람들 사이에는 춘천 부근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 등의 지명이 절을 옮길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을 통하여 한계사를 중창할 때 비금사를 옮겨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종연(宗演)·광학(廣學)·각동(覺洞)·영희(靈熙)·법찰(法察)·설흡(雪洽) 등이 중건을 서둘러 790년에 한계사 터 아래 30리 지점에 이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雲興寺)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년(성종 3) 다시 불탔으므로 승려 동훈(洞薰)·준희(俊熙) 등이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深源寺)라고 개명하였다.

「심원사사적기」에는 이 때 법당·극락전·벽운루(碧雲樓)·선승당(禪僧堂)·동상실(東上室) 등의 건물을 중수하였으며, 부속 암자로는 동암(東庵)·원명암(元明庵)·백련암(白蓮庵)·오세암(五歲庵)·봉정암(鳳頂庵) 등이 있었으며, 동훈·준희 등의 뛰어난 고승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450년 동안은 별다른 변화 없이 전승되다가 1432년(세종 14)에 네 번째의 화재로 절이 전소되었다. 그 뒤 2년 만에 동하(洞下) 30리쯤 되는 곳에 선구사(旋龜寺)라고 개칭하고, 의준(儀俊)·해섬(海暹)·취웅(翠雄) 등이 법당과 극락전, 요사채 2동을 세웠다.

그러나 1443년에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고, 1447년에 옛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우고 영축사(靈鷲寺)라 하였다.

그러나 김시습(金時習)이 부속 암자인 관음암(觀音庵)에 와서 머리를 깎고 출가했던 1455년(세조 1)에 화재로 소실되어 재익(載益)·재화(載和)·신열(愼悅) 등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에 중건하고 백담사라고 개칭하였다.

1775년(영조 51) 겨울에 다시 불에 타서 승려들은 흩어졌지만, 최붕(最鵬)이 태현(太賢)·태수(太守) 등과 인법당(因法堂)을 짓고 심원사(尋源寺)라 개칭한 뒤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香閣) 등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심원사를 다시 백담사로 개칭한 것은 최붕과 설담(雪潭)이 절을 중건한 1783년(정조 7)이었고, 이 때의 백담사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내용

현재의 이름인 백담사는 7차에 걸친 실화가 닥쳤고, 그 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백담사라는 이름은 골이 깊고 흐르는 물의 연원이 먼 내설악에 자리한 절이라는 뜻이나, 거듭되는 화재를 피해보고자 하는 뜻이 담겨진 이름이라는 설을 다음의 전설로 알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화재가 있을 때마다 주지스님의 꿈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분이 나타나 변을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기이하게도 지금도 이 근처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듯한 암석이 솟아 있다.

거듭되는 화재로 절 이름을 고쳐보려고 하던 어느 날 밤,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潭]를 세어 보라고 하여 이튿날 세어보니 꼭 100개에 달하였다. 그래서 담자를 넣어 백담사라 이름을 고치는 동시에 지금의 장소로 옮겼는데, 담자가 들었기 때문에 그 뒤부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915년 겨울밤에 일어난 화재는 불상과 탱화 20여 위(位)를 제외한 건물 70여 칸과 경전·범종까지도 모두 태워 버렸다. 당시의 주지 인공(印空)은 사무(寺務)를 오세암에서 행하면서 백담사의 중건에 착수하였고, 기호(基鎬)와 인순(仁淳) 등이 그를 도왔다.

강원도 일대를 다니면서 시주받은 1,786원 30전으로 1919년 4월에 법당 20칸과 화엄실(華嚴室) 20칸을 건립하였으며, 1921년 봄에는 응향각(凝香閣) 및 사무실 30칸 등을 이룩하고, 종과 북을 새로이 주조하여 낙성법회(落成法會)를 열었다.

한용운이 『백담사사적』을 편찬한 1928년 당시의 백담사는 복구가 끝나고 정리가 되어 있을 때였다.

근대에 이르러 백담사는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과 『십현담주해( 十玄談註解)』·『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소가 되었고 만해사상의 고향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절은 6·25전쟁 때 소실되었으며,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징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칠성각(七聖閣)·선원(禪院)·요사채 등이 있고, 남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관음전(觀音殿)이 있다.

산내의 부속 암자는 현존하는 것보다 이미 폐허가 된 것이 많다. 한용운은 유지(遺址)만 남아 있는 역사 미상의 암자로서 동암·백련암·원명암·은선암(隱仙庵)·극락암(極樂庵)·오봉암(五峯庵)·복호암(伏虎庵)·지장암(地藏庵)·흥성암(興盛庵)·자장암(慈藏庵)·금선암(金仙庵) 등 11개가 있었다고 『백담사사적』에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도 폐허가 되어버렸지만, 1777년에 창건한 통선암(通禪庵)과 심적암(深寂庵), 1864년(고종 1)에 역암(饑庵)이 창건하였고 1919년에 훼철된 보문암(普門庵), 1884년에 창건한 축성암(祝聖庵) 등이 있다.

현존하는 부속 암자로는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이 창건하여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함으로써 전국의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한 곳이 된 봉정암, 자장이 선실(禪室)로 사용하기 위해서 창건하고 주석하다가 관음진신(觀音眞身)을 친견한 뒤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하였으며, 뒤에 다섯살의 신동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견성(見性)한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을 바꾼 오세암, 1648년 유학자 김창흡(金昌翕)이 은거하기를 맹세하고 창건한 영시암(永矢庵), 구전으로 전해져오던 옛 절터에 1903년 원호(源湖)가 세운 원명암(圓明庵)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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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여행

2018.07.07~08

KTX 청량리-강릉

 


경포해수욕장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동해안 최대의 해변이다.

강릉시의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6km, 경포대에서 1km 지점에 있으며 행정구역상 강릉시 안현동 산1번지에서 강문동 산1번지에 이르는 지역이다. 경포호(鏡浦湖)와 바다 사이에 생성되어 있는 사빈(砂濱)으로, 6km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주위에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또한 곳곳에 산재하는 해당화는 한층 아름다움을 더한다. 부근에는 경포대와 오죽헌(烏竹軒) 등 많은 명승고적이 있으며, 피서객이 많이 찾아온다. [네이버 지식백과]

 

 


 

 

 

7월 6일 해수욕장 개장도 했고

비도 안 오고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강릉에 도착하는 순간 너무 추워서 걱정 했지만

그래도 하늘이 점점 맑아지고 있으니 발은 담글 수 있을꺼라 생각했다.

 

 

 

도착한 경포해변엔 사람들도 많고 수영복 차림에 튜브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서

살짝 기대했지만

 

수! 영! 금! 지

물 근처에도 못가게 가드 분들이 호각을 분다.

여름 물놀이하러 와서 발도 못 담그고

너무 추워서 무슨 겨울 바다인줄ㅠ

일찍 일어났지만 날이 흐려서 일출도 못 봄.

 

 

 

 

돗자리 깔고 앉아 하염없이 파도치는 바다만 바라보다 왔음.

 

 

 

 

 

 

 

 

식당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집으로 오기 전에 먹었던 물회

전날 다른 횟집도 가긴 했지만 이름 대비 가격 대비 그냥 다 비슷해서 후기는 생략.

 

이집 상호는 생각 안나는데

다음에 경포해변 가면 다시 가서 먹고 싶다

양도 푸짐하고 맛있었던 물회

최근에 다른 곳에서 먹은 거랑 너무 비교돼서 또 생각이 난다.

 

 

 

 

 

202버스 타고 다시 강릉역으로

올림픽 덕분인지 교통도 잘 되어있고

차 없이도 뚜벅이로 충분히 잘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집에 갈 때도 수호랑과 반다비가 배웅을 해주는구나ㅎ

 

 

 

 

수호랑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로 서쪽을 지켜주는 신령한 동물인 백호를 캐릭터화한 것이다. 올림픽 정신인 세계 평화와 올림픽에 참여하는 선수, 관중 등을 지켜준다는 의미의 ‘수호’와 호랑이와 강원도를 대표하는 정선아리랑의 ‘랑’을 합친 것이다.

씩씩하며 도전 정신과 열정이 뛰어난 캐릭터이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마스코트를 선정하기 위해 2014년 대국민 공모를 냈으나 당선작을 뽑지 못하고 국내 디자인 전문가 그룹을 통해 2년간의 개발 끝에 수호랑을 탄생시켰다.

 

 

반다비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공식 마스코트로 강원도를 대표하는 동물인 반달가슴곰을 형상화한 것이다.

반달가슴곰의 ‘반달’과 대회를 기념한다는 뜻의 ‘비(碑)’를 합쳐 만들었다. 강한 의지와 용기를 가졌으며 패럴림픽 선수들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응원하는 따뜻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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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2018.07.07-08.

 

경포생태저류지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경포호 수량 조절을 위해 조성한 생태 저류지.

 

경포생태저류지 조성은 녹색 도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경포 습지가 조성되면서 경포 호수로 유입되는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200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경포생태저류지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경포호 유입 하천인 경포천(鏡浦川)[강릉시 죽헌동 일원]에 생태 저류지를 조성하고, 주변 환경을 정비하여 시민 편의 시설인 산책로, 꽃밭 등을 조성하였다. 사업비는 총 21억 9000만 원이 소요되었는데, 국비 13억 1400만 원, 시비 8억 7600만 원이었다.

 

2010년 31만 9000㎥에 호안 및 토공(土工) 공사를 실시하였고, 2011년 군정교(郡丁橋) 확장, 방류 수문 및 수량 조절보 설치, 2013년 저류지 조성 1단계 공사를 준공하였으며, 2014년부터 2015년 2단계 공사로 친수 공간 조성 공사를 진행하였다.

 

경포생태저류지 조성 사업은 저류지 1개소[25만 3000㎡], 군정교 확장 L〓29m, B〓53.5m, 보도교 1개소, 수량 조절보 1개소 , 방류 수문 1개소 등이 설치되었고, 친수 공간으로는 산책로, 주차장, 배수로, 연못, 유지 관리 도로, 유지 관리 시설 등이 있다.

 

경포생태저류지는 오죽헌(烏竹軒)과 선교장(船橋莊) 사이에 있는 경포천과 경포천 주변 농경지에 조성한 생태 하천이다. 저류지 중심을 가로질러 메타세콰이어를 심어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산책로 주변으로는 유채꽃과 코스모스 등을 심어 봄가을로 만개한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죽헌 관람을 끝내고 이동한 곳은

오죽헌 입구 쪽에 있는 경포 생태 저류지!

이 곳은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고, 메타세쿼이아를 볼수 있다.

 

가볍게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솔직히 멀리서 봤을 때는 조금 실망했다.

나무가 허접해 보여서..

 

 

 

가까이 가보니~ 멀리서 봤던거와는 달리 너무 멋있잖아ㅎ

 

 

 

 

신나서 사진 찍고 아까부터 멀리 보이던 분홍색 꽃이 궁금하여 옆길로 이동했다.

조금 일찍 핀 코스모스 들인가 해서 안 가려다가 갔는데

 

대박!

연꽃이었다.

매년 연꽃 축제할 때 찾아서 연꽃 피는거 보러 가야지 생각만 하고 못 갔는데

이곳에서 이렇게 볼 줄이야

정말 이날 최고 신났었다

이렇게 많이  핀걸 본것도 처음이었고

보고 싶었던 장면이었기에

이곳에 한참 앉아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강릉선교장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63

https://knsgj.net/

 

 

효령대군의 11대손에 의해 처음 지어려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나날이 발전되어 증축되었다고 한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으로 국가 지정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개인소유의 국가문화재로 후손들이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다녔다 하여 선교장이라 이름이 지어졌지만 지금은 논이 되어서 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글쎄?

솔직히 입장료도 오죽헌보다 비싼데

기대를 해서 그런가 실망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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